『Earth = Us』展
전시주제
“Earth”는 “지구, 땅, 세상”을 뜻하는 자립성이 있는 명사이지만 “US”는 대상에 의존해서만 쓰이는 목적어로 홀로 설 수 있는 속성적 힘이 없다. 태초에 단어의 정의와 같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지구와는 달리, 인간은 지구환경 속에 기대어야만 탁생할 수 있기에 이 둘의 관계는 언제나 상고적인 자세를 취하게 한다.
환경문제 역시 지구와 인간이 양립하는 불가피적 사변(事變)이다.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지구의 사변조차 그 연쇄의 극에 조정된 첫째 원인, 즉 궁극원인(窮極原因)은 존재한다. 이 전시는 양극에 달하는 궁극적 원인을 구색한다면 지금의 환경문제의 맥(脈)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이에 『EARTH=US』는 지구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환경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지구환경에 대한 존재 현상을 다각도로 표현하고자 기획되었다. 작품을 통해 환경문제라는 거시적인 현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환경의 폐허에 절망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근원적 물음의 마침표는 결국 우리 자신(=US)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제1섹션 : 열대우림 FOREST작가 이송준은 동물을 형상화하여 조형물로 만든다.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작품을 스테인리스 중고식기로 제작한다. 「Symbiosistence-rhino1」, 「Symbiosistence-leopard」, 「Vercuchi」, 「Symbiosistence-bird」는 재료의 본질적 기능이 사라진 중고식기를 이용하여 동물 형상의 조형물로 재생하고 있다. 인류사에 있어 가치가 옅어지는 모든 것들은 서서히 제 자리에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인간 역시 지구환경을 대할 때 이와 같은 행위를 반복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전 지구적 환경문제의 이슈로 매번 손꼽이는 “열대우림”이 있다. 우리는 어느덧 열대우림과 같은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효용 가능한 자원으로 여기게 되었다. 자신의 가치를 빠른 속도로 소모하고 있는 열대우림, 그 결말이 무엇으로 귀결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서 울창했던 열대우림이 한 그루의 그루터기가 될 때까지의 자취를 보여주며, 어느새 사라지고 남은 존재의 마지막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제2섹션 : 사막 DESERT작가 최은정은 신문지를 층층이 쌓아올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결과물을 보여준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이는 엄청난 노동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시간」 역시 신문지를 이어붙이고 단단하게 건조시키는 노동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의 축적을 시각화하였다. 이런 반복의 결과물은 바람에 의해 사막에 그려진 모래의 주름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가가 표현한 사막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걷잡을 수 없는 사막화의 속도로 인해 메말라 버린 대지를 재생하기 위한 기나긴 시간만이 필요하게 되었다. 작품의 속성은 현재 사막이 놓인 성질과 같은 맥을 걸어가고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담은 행위의 결과물을 통하여 인간의 반복적인 행동은 반드시 결과를 수반함을 시사하고 있다. 두 번째 섹션은 우리가 그리는 사막의 모습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아가 지구환경의 재생(rebirth)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작품에서 시도되는 기나긴 시간의 투쟁은 우리 개개인의 노력으로 지나간 시간들의 복원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세 번째 섹션 : 대지 GROUND작가 김영원은 인체를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조각한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그의 인체 시리즈 중, 2005년 이후부터 시작한 그림자 시리즈 內 작품인 「그림자의 그림자 2」를 선보이고 있다. 작품은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체 조각물을 평면으로 구성하여, 각각의 개별적인 특성이 사라진 자리에 작품의 본질적인 존재감으로 채운다. 또한, 사람을 나타낼 때 표식과도 같은 얼굴을 부재로 남겨 집단 속에서의 개인의 특징보다는 집단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다수의 부조 작품을 복제하여 세워놓음으로써 개인이 이룬 집단이 서 있는 공간을 확장하여 지구의 대지(大地)로 만들어간다. 지구환경에 대한 관점 역시 각 집단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양산됨을 나타낸다. 이번 섹션에서는, 개인이 집단을 벗어나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은 채 대지를 바라본다면 개인에게 이 지구는 어떤 의미일지 물음을 던짐과 동시에, 관람자들이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제4섹션 : 연소 BURNOUT작가 YALL, 김형준, DWAN은 설치작품 「불장난 : 잔향」에서 상징적 자원인 불을 사용하여 버려진 나무를 태우는 반복적인 행위로 파괴된 지구환경을 표현한다. 이번 섹션에서는 “향(香)”이라는 색다른 매체를 통해 환경의 끊임없는 연소를 연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의 잔재는 소각되고 있다. 이 지구의 긴 역사 속, 일순간의 재가 되어 날아가는 수많은 자원은 뜨겁던 시간을 깊숙이 끌어안은 채 본연의 향을 남길 뿐이다. 작가는 환경을 향해 타오르는 불길 속 남겨진 잔향을 통해 절망 끝에 놓인 자연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불태운 소중한 자원들, 그 잔향 속에 던져진 우리들의 물음 하나. 우리의 지구를 태우는 것은 존재의 '향(響)'을 울리는 것인가, 더 큰 불장난을 '향(向)'하는 것인가.
제5섹션 : 빛 LIGHT작가 안종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료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작품에 녹아들게 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는 탁월한 결과물로 연출된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다소 생소한 재료인 “렌즈”를 이용한 「Kaleidoscope」, 「호수나비」와 “스테인리스 스틸”을 소재로 한 「Glass Casting」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들은 모두 “빛”이라는 근원적인 존재를 시각화하여 구현하고 있다. 빛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끝없이 뻗어 나간다. 창성한 빛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환경에 무한히 확장되며 인간의 생명과도 같은 한 줄기의 빛으로 귀결된다. 그 빛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의 지구에서, 우리가 처한 환경에 대한 깊은 염원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제6섹션 : 재생 RECYCLE작가 효제인은 운반용 팔렛, 재사용 천으로 이뤄진 보루, 쓰다 남은 담장 기둥 등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사용된 재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쓰임을 다해 버려진 오브젝트다. 산업혁명을 기준으로 인간은 자본의 팽창, 공산품의 대량 생산, 도시화 등 많은 업적을 이루는 한편 넘쳐나는 생산 속에서 버려진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The Scene of Spectacle」은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인간의 집착어린 생산욕구를 재생(再生)을 통해 단 한숨의 빈틈없는 풍경으로 연출한다. 여섯 번째 섹션에서는 버려진 존재가 사유하는 가치를 작품으로 시각화하여, 끊임없는 생산의 장관 속 이면의 존재가 만들어낸 환경의 폐허를 다시금 재생하는 역할 또한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제7섹션 : 물 WATER작가 강인구는 유리자갈이나 돌멩이 등 인공적으로 가공된 자연물을 연결하여 공간을 채워나간다. 해당 재료들은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갈라지고 깨진 형태의 재료들을 연결한 후 다시 높낮이를 조절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은 완성된다. 이번 섹션에서의 「춤을 추다.(Dancing.)」, 「결(洯)」은 긴 시간 서서히 움직임을 지속하는 이 땅에서 인간의 생명적 활동인 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시각화한다. 물은 흐르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마르기도 한다. 어떤 곳은 수해를 막지 못하여 절망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선 물이 메말라 고통받는다. 작가는 이러한 물의 양면성을 작품의 착시현상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관람자가 몸을 움직여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형태가 나타나는 작품 특유의 착시를 통해, 물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시각에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의 모습은 분명 다르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제8섹션 : 나 자신 INDIVIDUAL작가 308 Artcrew은 회반죽을 이용한 소석고에 LED 조명이라는 특수한 장치를 더해 작품을 완성시킨다. 「Individual」의 석고상들이 가리키는 최종 집합체는 바로 관람객 개개인이다. 개인의 자아는 그 개체가 살아가는 환경의 테두리에 존재하며, 함께 존재하는 수많은 석고상 중 우뚝 선 하나의 개체는 선택받은 자아임을 나타낸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개인 스스로의 내적 선택이 현재 우리의 환경 전체를 구축하는 힘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환경을 공유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의지로 관계를 맺는 유기적인 형태의 조합을 통해 지구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고찰하며, 지구의 나아감은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종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