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이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연습 ] 展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연습> 이지이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연습〉은 변화하고 사라져가는 풍경과 그 안에 남겨진 기억의 흔적에서 시작한다.
익숙하게 지나쳐온 장소와 풍경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도시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한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풍경에서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거나, 분명 존재했던 장소가 사라진 뒤에야 그곳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장소는 더 이상 현실에서 마주할 수 없지만 기억과 기록 속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남아 있다.
작업은 남양주의 여러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특별한 장소를 찾아 나서기보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해온 길과 주변의 풍경, 개발과 변화의 과정에 놓인 장소들을 바라보고 기록한다. 사진은 사라지기 전의 풍경을 붙잡아두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작업에서 사진은 기록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기록된 장면은 다시 회화의 출발점이 된다.
사진 속 풍경은 긴 천 위로 옮겨지고 먹의 번짐과 스밈, 겹침을 통해 다시 구성된다. 사진이 한순간의 모습을 선명한 이미지로 고정한다면, 먹은 그렇게 고정된 형상을 다시 흐트러뜨린다. 물과 먹이 천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경계는 번지고 형태는 불분명해진다. 의도한 흔적과 통제할 수 없는 흔적이 뒤섞이며 처음 기록했던 장소 역시 점차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기억이 남는 방식과 닮아 있다. 기억 역시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는 희미해지고 사라지며, 남겨진 조각들은 서로 겹치거나 다른 기억과 뒤섞인다. 분명했던 장면이 불확실해지는 동안에도 어떤 감각과 흔적은 남는다. 먹이 번지고 스며들며 형상을 잃어가는 과정은 그렇게 사라지고 변형되는 기억의 시간을 드러낸다.
그래서 작업 속 풍경은 특정한 장소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진으로 기록된 실제의 장소와 기억 속에서 변형된 장소, 먹의 움직임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겹쳐진다. 현실의 풍경은 점차 구체적인 장소성을 잃고, 기억과 흔적 사이에 머무는 또 다른 풍경으로 변화한다.
‘사라짐’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소가 사라진 뒤에도 그곳을 지나온 시간과 경험은 기억 속에 남고, 기억이 희미해진 뒤에도 어떤 흔적은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사라지는 것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연습〉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거나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사라지는 과정을 바라보고 그 이후에 남겨지는 것을 마주하기 위한 연습이다.
풍경을 기록하고, 다시 흐리게 만들고, 그 위에 남겨진 흔적을 바라보는 과정은 결국 사라지는 것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완전히 붙잡을 수도, 온전히 되돌릴 수도 없는 것들 사이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지를 바라본다.